꿈을 찾는 코끼리와 못난이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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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 댓글 0 조회 265 18-02-1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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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저 육아휴직을 신청하려고 합니다"



팀장님은 내가 뭘 이야기해든 이미 면역이 되어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회의실에 들어왔다그동안 면담을 요청할 때마다 퇴사하겠다팀을 옮기고 싶다 등의 요청으로 팀장님을 난감하게 했던 나, 이번에는 육아휴직이라는 카드를 빼들었다팀장님은 육아휴직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한 듯 눈동자에 당황한 기색이 살짝 비친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육아휴직을 써야 하는 이유를 수 차례 연습한 그대로 읊었다.


오랫동안 상상해왔다사직서를 담은 봉투를 온 힘을 다해 팀장님에게 집어던지고 그 봉투는 공중에서 재빨리 한 바퀴 휭 돌아 물에 적신 휴지처럼 팀장님의 이마에 탁 달라붙는 장면,실제로는 이보다 더 통쾌한 느낌이었다.


중견기업의 해외영업팀 6년차, 공대 졸업생이라면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진로인 대기업 공정 엔지니어보다는 해외영업이라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공대 출신에게 해외영업 직무는 좁은 관문과 같았지만 노력 끝에 입사할 수 있었다. 나의 첫 업무는 A 지역 영업 담당자로서 계약을 성사시키는 영업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아직 신입 물이 빠지지 않았던 2년차역대 해외영업사원 중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게 되었고, B 거래처에 2억원을 떼이는 사상 초유의 사고를 냈다.


"혹시라도 자살 같은 건 절대 생각하지 말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다 지나갈 일이니까"

수 선배가 늦은 밤 퇴근하는 나를 불러내 굴국밥을 사주며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하고 싶었던 일을 했던 즐거운 직장이 그 사건 이후로는 지옥으로 변했다. 감봉을 포함하여 징계를 받고 이마에는 문제아라는 낙인이 찍혔다. 매일같이 "너 이거 밖에 안돼?", "너 말 못하지아 못하는구나?" 와 같은 공개적인 비난과 타박을 받았다.


말뚝에 매인 아기코끼리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그 말뚝을 뽑을 충분한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기력한 코끼리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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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뒤로 3년 반이 흘렀지만 팀장님의 부정적인 피드백과 질책은 그대로였다그러면서 나의 본 업무에 팀장님의 업무까지 점점 더해졌고성장하는 것이 아닌 소모되는 느낌에 한없이 공허했다이직도 준비해보았지만 해외영업이 나한테 맞는 일인지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린 상태로 이직준비를 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인형뽑기 자판기 속에 갇힌 인형처럼 술취한 누군가가 와서 운좋게 뽑아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행여 누군가 와서 인형을 뽑는다 치더라도 못난이 인형 같은 내가 그 영광을 차지할 리는 만무하다는 사실도 슬프지만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몸에 탈이 났다기침이 점점 심해지더니 고열이 났다밤에는 오한이 찾아왔다감기약을 먹으며 일주일을 버텼다힘겹게 집에 도착한 어느 날 저녁천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던 딸아이 앞에서 고꾸라져 일어나지 못했다. 어린아이들과 노인들만 걸린다는 폐렴 진단을 받고 6일간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 뿐만 아니었다이유 없이 항상 불안했고 그 불안이 가중될 때면 가슴이 답답해 숨을 쉬기가 어렵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뛴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왼쪽 볼 살갗이 이따금씩 마치 팽팽한 실을 튕기듯 파르르 떨리기도 했다왼쪽 눈알이 떨릴 때면 눈을 찡그리게 되는데그 원치 않는 표정을 짓는 것이 싫어 어색하게 웃는 척 하는 일도 잦아졌다.

무서웠다지금껏 건강만큼은 큰 걱정하지 않고 살아왔지만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회사를 당장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나의 가족 사랑하는 아내와 세상 모두를 주고 싶은 딸이 있었다이대로 목적성 없는 퇴사를 감행한다면 그 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의 범위도 좁을 뿐더러 온통 불만족스러운 길만 남아있을 것이 자명했다무작정 퇴사하고 싶은 욕구를 마음 속 깊이 꾹꾹 눌러가며 다른 대안을 찾아야 했다힘들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내 일을 하며 즐겁게 고생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일이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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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미생 중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뭐라도 배우고 준비해야겠다는 본능적인 판단으로 여러가지 강좌와 세미나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그리고 직감에 이끌려 퇴사학교의 주말창업 워크숍보통 직장인의 말하기 교습실에 등록했다하고 싶은 일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라이프코칭 과정에도 등록하였다무언가 배우는 과정을 통해 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벼워지고 활력을 되찾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많은 생각을 하는 편이지만출발도 하기 전에 혼자만의 생각들에 발이 엉켜 쉽게 넘어지곤 했다창업 수업을 받으며 실행의 중요성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어떤 일을 해야할지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 탁상공론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구상대로 실행 먼저 해보고그 결과로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게 일의 본질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실행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교훈을 머릿속 깊이 새겨넣었다.

"모든 사람은 충분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존재로
각자의 문제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거나
스스로 찾아낼 능력이 있다"

 라이프코칭은 이와 같은 인식을 기본 전제로 두고 있다답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생각만으로는 그 답에 이르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코치라는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코치의 가이드에 따라 내 과거현재미래를 온 힘을 다해 들여다보고스스로의 마음을 성찰하고내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즉각적으로 실행하는데 최대한의 시간을 투자했다.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배우고나 자신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될수록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할지 점차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내 꿈을 구체화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었다그리고 결정하였다퇴사보다는 회사에 안전하게 매여있으면서 시간을 벌 수 있고경제적인 지원까지 보장되는 육아휴직을 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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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아휴직 50일 차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잘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을 위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위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동기를 가지고 상담심리학과 긍정심리학을 공부하고 있고라이프코치를 양성하는 교육 과정을 신청하였다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과 메시지 전달을 위해 스토리텔링과 스피치를 공부하고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어 퇴사학교 글쓰기 강좌를 수강하고 있으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글을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폐렴을 앓아보니 건강을 잃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진리를 진정 이해했기에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수영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매일 하고 있다마지막으로육아에 가장 큰 우선순위를 두고 하루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딸을 보며그리고 아빠와 더 친밀해지면서 정서가 안정되고 성격이 한층 밝아진 딸을 보며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무기력한 코끼리와 인형뽑기 자판기 속 못난이 인형은 이제 내 사전에 없다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구체적으로 결정하기 전이지만 2017년 내로 내 삶의 의미와 중요한 가치를 확고히 정의하고나의 꿈과 목적을 선명한 그림으로 머릿속에 각인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목적지를 향해 흔들림 없이 꾸준히 걸어가는 그런 인생을 살리라 다짐해 본다.


※ 이 글은 '보통 직장인의 위대한 글쓰기'의 1주차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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